역대급 웹툰이었던 '타인은 지옥이다'가 드라마화 된지 약 2달만에 종영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 처럼 작품 초반에 왕눈이 역할이 유기혁에서 서문조로 바뀌며 스토리가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대로 웹툰과 드라마는 비슷하지만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서사에서 캐릭터가 곧 플롯이다. 캐릭터의 설정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달라진 행동이 다른 스토리라인을 그린다. 타인은 지옥이다 드라마에서 많은 캐릭터의 설정이 조금씩 달라졌고, 그로 인해 원작과는 조금 다른 스토리로 끝맺음을 맺게 됐다.

이런 관점으로, 캐릭터 설정의 차이를 분석하여 드라마 / 웹툰 전체적인 스토리 차이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윤종우

트라우마에서 사이코패스로

 

정상 수준에서 서서히 미쳐갔던 원작의 윤종우와는 달리, 드라마 윤종우는 중반 부분부터 얼 빠진 수준 이상으로 사람이 미쳐갔다.

웹툰 윤종우는 궁지에 몰린 쥐 처럼 겁에 떨다, 결국 고벤저스에 의해 감금 당한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탈출 및 구출(지은, 창현)을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이' 고벤저스들을 죽이고 그곳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남은 채 마무리된다.

드라마 윤종우는 겁에 떨긴 했지만, 내면의 폭력성이 작품 초반부터 조금씩 새어나왔다. 궁지에 몰린 쥐가 아니라 서서히 미친 개가 된 종우는, 서문조(왕눈이)가 깔아놓은 빅픽처의 말이 되어 철저히 그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결국 미친 사람을 넘어, '사이코패스 살인자'로 변한다.

전투력도 달라졌다. 원작 종우보다 더 사나워지긴 했지만, 체격이 크게 작아졌고 그로 인해 고등학생 3명과의 싸움도 겨우 이긴다. (원작 종우는 cctv 없는 것까지 확인한 후, 큰 피해 없이 3명을 모두 때려잡는다)

드라마 속 종우는 원작 보다 훨씬 더 빠르고 깊게 미쳐갔다. 저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진작 고시원을 나가지 않는가? 하는 개연성에 의문이 들 만큼 말이다.

원작의 종우는 정말 서서히 미쳐갔기 때문에 그가 미쳐가는 과정, 그로 인한 행동 변화, 움직임 등등이 모두 납득할 수준이었다면. 드라마 속 윤종우는 결말을 위해 제작진이 어거지로 끌고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살인마 소굴이라고 거의 확정하는 분위기에서 여자친구인 지은을 구하겠다고, 경찰에 신고도 안하고 들어가는 종우나 그걸 따라 들어가는 후임 창현이나 도저히 납득이 안갔다.

(여경에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신고가 아닌, 경찰 친구에게 얘기하는 수준이다. 이전에 고시원을 신고했다 장난전화 취급을 받는거로 어느정도 개연성을 부여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납치된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신고하면 경찰은 출동할 수 밖에 없다.)

원작의 윤종우는 고시원을 다시 돌아간 것도, 도망치기 직전 자신의 신상정보를 숨기기 위해 노트북과 짐을 챙기기 위함이었지만, 드라마의 윤종우는 여자친구인 지은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

고시원으로 되돌아간 이유가 다르니, 마음가짐도 다르고, 결국 스토리도 다르게 전개되어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 웹툰에서 202호에 살았던 종우였기에, 드라마 속 묵었던 모텔의 호수도 202호였다는 이스터에그가 있다.

2. 왕눈이 / 서문조 X 유기혁

'귀신'에서 사이코 집착남으로

 

 

웹툰에서 202호에 사는 종우와 203호에 사는 왕눈이, 그리고 201호에 사는 누군가(결국 그도 왕눈이었음)가 있었다.

그 '누군가'를 형상화 한 것이 서문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왕눈이는 주인공에게 관심을 갖긴 했지만, 서문조 처럼 스토커 수준으로 집착하거나 그를 살인마로 키울 생각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치과의사도 아니었다. 설정만 보면 오히려 유기혁이 더 왕눈이에 가깝다. 이것이 이전 포스팅에서 웹툰 속 왕눈이는 '유기혁'이고, '서문조'는 왕눈이 포지션에 있는 대체 캐릭터라고 칭한 이유다.

서로의 성향이 다르니 결국 종우가 살인하는 동기도 달라지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원작에서 종우가 살아남은 건 왕눈이와는 관계 없이 온전히 본인의 기지였지만, 드라마는 종우가 살인을 하도록 판을 깔아준다.

사망한 원인도 다르다. 서문조는 윤종우를 완벽한 살인마로 만들기 위해, 본인이 모든 죄를 끌어안고 윤종우에게 죽음을 선택한다. 반면 왕눈이는 키위에게 망치로 맞아 사망한다. (그럼에도 즉사하진 않아 정말 귀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서문조가 사이코 살인마의 정점을 보여줬다면, 왕눈이는 마치 '귀신' 같은 존재로 '얘가 정말 사람이 맞을까?' 하는 미스터리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설정이 가장 많이 달라진 캐릭터인 왕눈이 / 서문조 X 유기혁 이었다.

3. 키위 / 변득종, 변득수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말 더듬고 실실 웃는 키위와 정색하고 말 안더듬는 키위, 둘을 변득종과 변득수로 나눠놓았다.

왕눈이에 불만을 갖게 되는 원인도 다르다.

키위는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하며, 자신을 부하 부리듯 다루는 왕눈이에게 반감으로 그를 죽인다.

반면 변득종은 형인 변득수를 죽인데에 대한 불만이 더 컸다.

원작에선 왕눈이를 죽이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드라마에선 큰 활약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서문조를 항상 증오하고, 죽일 것 같았던 변득종이 왜 종우에게 달려들었는지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개연성 떨어지는 전개다. 반전 결말을 위해 어거지로 끼워맞춘 느낌.

쌍둥이임이 처음 밝혀졌을 때도 그렇다. 종우 보다 먼저 살고 있었던 조폭 아저씨 조차 키위가 쌍둥이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설정.

쌍둥이임이 밝혀진 후 부턴, 대놓고 돌아다니는데, 그럴거면 왜 동생인 척 연기하며 숨어지냈던 걸까?

4. 히키코모리 / 홍남복

히키코모리에서 변태사이코로

 

특별한 별명이 없어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원작과 비슷한 성격에 변태 + 조선족 이라는 설정이 추가됐다. 또, 원작에선 크게 모자란 모습으로 그러졌지만, 드라마에선 사이코 변태라는 점 빼면 말도 멀쩡히 잘 하고 지능도 정상수준으로 보인다.

드라마 속에선 자신이 서문조(왕눈이)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자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원작에선 그냥 조용하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한다.

5. 고시원 아줌마 / 엄복순

아줌마에서 악마로

 

왕눈이의 엄마이자, 특별함 없는 고벤져스의 일원이었으나, 드라마에선 그 위상이 떡상했다.

약물을 이용해 고시원 외부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고벤져스 내 평가에서 서문조에 준하는 위엄을 갖고 있다.

6. 민지은

걱정에서 경멸로

여전히 종우의 고향에 살고 있던 웹툰의 지은이지만, 드라마 속 지은이는 종우보다 먼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웹툰에선 종우를 걱정하는 모습이 더 많이 비춰졌던 지은이지만, 드라마에선 걱정 보단 오히려 그를 더 몰아세우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종우와의 만남 이후, 웹툰 지은이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지만(왕눈이가 납치했다는 건 거짓말), 드라마 지은이는 실제로 잡혀 종우를 흑화하게 한다.

7. 사장 형 / 신재호

빛에서 찌질이로

 

드라마에서 찌질한 꼰대의 모습을 보여줬던 재호와는 달리, 웹툰에선 '빛재호'라며 칭송을 받았다.

물론 개인주의에 어느정도 꼰대 기질이 있긴 했지만, 모두 주인공을 걱정해서 한 말들과 행동이었다.

왕눈이와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도, 웹툰 재호는 철저히 주인공 편을 들어주며, 주인공 입장에서 화를 내주지만, 드라마 재호는 종우와의 갈등에 끼어들고 자신을 불쾌하게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낸다.

8. 병민씨 / 박병민

진상에서 찐따로

 

 

웹툰과 드라마 둘 다 찌질한 건 변함이 없으나, 웹툰의 병민씨는 드라마 처럼 찐따 같지는 않았다. 말을 더듬지도 않았고, 크게 소심하지도 않았다.

9. 경찰

 

본편에 없던 경찰 캐릭터들이, '타인은 지옥이다 - 연쇄묘 살인사건' 이라는 외전을 통해 등장해 드라마와 연계됐다. 그런데 아무래도 드라마 작가 / 감독이 우리나라 경찰에 원한이 있는 듯 하다.

물론 경찰들이 대응을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너무 무능력하고 의지 없는 모습으로 그린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정화 순경을 제외한 경찰들은 무능력의 끝판왕을 보여주며, 소정화 순경 역시 능력 대비 무리한 행동을 자주 하여 불안감을 일으킨다.


웹툰과 플롯을 달리하여 다른 결말을 맞이한 시도는 좋았지만, 그 개연성에 의문이 드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불안하고 의심하면서도, 돈 몇푼 때문에 끝끝내 고시원에서 붙어사는 종우나,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고 장난전화로 치부해버리는 경찰,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는 소정화 순경.

특히 마지막회의 개연성은 정말 안타까웠다. 왕눈이를 죽이러 갔던 키위가 왜 종우와 싸우다 죽었으며, 소정화 순경은 홍남복을 죽인 걸 엄복순으로 확신한건지.

마지막 반전을 위한 어거지 설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릴감과 몰입감이 뛰어나서 재미를 주는데는 성공적인 드라마였지만, 플롯의 완성도에선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메세지를 너무나도 1차원적으로 해석한 것도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고시원을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으로 표현하는데, 너무 대놓고 지옥인 곳이라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거창한 명언을 갖다 붙이기 좀 민망한 느낌? 차라리 종우가 미쳐가는 와중에,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미친 사람 취급만 하는 지은이나 회사 동료들로 인해 더더욱 미쳐가는 종우의 모습이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메세지가 어울린다고 본다.

다만 어설프게 원작을 따라하기 보다, 드라마에 맞게 각색하여 전개해나간 부분에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싶다.

어쨌거나 꼬박꼬박 본방을 챙겨볼 만큼 너무나도 재밌게 봤고, 또 내 취향이었던 드라마였기에 앞으로도 이런 스릴러 작품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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