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8주년 드라마, 미생(未生). 현대판 홍길동전?
주인공 장그래의 시점을 주로 그려지는 현대 직장 생활을 잘 그려내 주는 작품이다. 바둑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바둑에 전념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근근이 지내고 있을 무렵, 우연히 한국의 무역회사 중 5손가락 안에 꼽히는 원인터네셔널의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의 개성 있는 성격
작품 중 주요인물을 꼽으라면, 장그래를 중점으로, 영업3팀 일원들과 그의 동기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판 홍길동전의 관점에서 이상공간인 영업3팀만을 놓고 관찰해보고자 한다.
주인공 장그래는 현대 사회의 약자 계층을 의미한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배운 것이라곤 바둑밖에 없다. 키도 작고,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남들과는 양과 질이 다른 노력’ 뿐이다. 낙하산으로 원인터에 들어왔으나, 그것으로 인한 차별을 받으며 힘겨운 회사 생활을 견뎌낸다. 복사기 사용법조차 모르는 그에게 회사 생활은 고달프기만 하다. 힘겨운 과거에 찌들고, 괴로운 현실에 억눌린 그의 표정에서 해맑게 웃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상식 과장(차장)은 현실 저항의 인물이다. 약자에 편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강한 힘 앞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때문에 실적이 잘 안 나오고, 승진을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가며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자신의 부하직원을 위해 신념을 딱 한번 깨트렸었고, 그 일로 인해 그는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항상 피곤에 절어있고, 머리는 까치집이다. 깎지 않은 수염은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는 마음만은 어린아이처럼 깨끗했다.
김동식 대리는 학벌은 다소 떨어지지만, 피나는 노력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원인터에서 일하는 성실한 직장인이다. 오상식 과장(차장)과 비슷하며, 주변 사람들을 챙길 줄 안다. 요즘 흔치 않은 착하고 노련한 직장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너무 착하고 볼품없는 외모에 여자들에게 줄줄이 차이곤 한다. 착하고 좋은 직장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 도구적 인물이다.
천관웅 과장은 다른 영업 3팀 일원들과는 대비되는 현실주의적 인물이다. 훤칠한 외모에 업무처리 능력도 꼼꼼한 엘리트인 그는, 영업 3팀에 돌아온 후 처음에는 딱딱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어느새 다른 팀원들의 따듯한 마음에 녹아들어간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끝까지 원인터에 남아있는 모습을 통해서 그의 현실주의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미생, 현대판 홍길동전?
영업 3팀은 다른 팀과는 다르다. 사회적 약자인 지방대생과 고졸(그것도 검정고시) 출신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팀장인 오상식은 위에 굴복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그 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그는 현대판 홍길동이며, 영업 3팀은 현실 저항의 공간이자 이상 공간이다. 오상식은 회사의 비리와 연줄에 저항(=현실저항)하고 다른 인물들과 함께 장그래를 정사원으로 만들(=이상 실현)려 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그는 결국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지만, 자신만의 회사(=율도국, 이상국가)를 따로 세운다. 그 후 그곳은 현실세계에서 밀린 인물(=사회적 약자)들이 줄줄히 들어온다. 박과장 비리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원 알루미늄으로 좌천된 김부련 부장부터 정직원이 되지 못한 장그래, 퇴사한 김선배, 그리고 출세보다는 행복을 택하는 김동식(=현실 저항 주의자)까지. 그들은 결국 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한다. 홍길동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이상 국가를 세워 나름대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만.
과연 해피앤딩인 것인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현실 고발적인 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현실을 전혀 바꾸지 못하고 현실에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국가를 세워 작품 내에서는 해피앤딩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것을 현실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결국 현실에 대해 패배한 자들이 도피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정말 해피앤딩인가? 어쩌면 우리들의 새드앤딩이 아닐까?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비판은 물론 소수의 노력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소수의 노력은 아무리 미화시켜도 결국 현실에 패배한다. 활빈당이 결국 조선에서 도망쳐 그들만의 나라를 세웠듯이.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들은 영웅인가, 혹은 패배자인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미생(未生)일 뿐인가.
그래도 이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 미생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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